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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한줌

'역행자' 를 읽고 수업에 가지 않았다.

선형 시스템이라는 것을 배우고 싶었다. 

대학교에서의 마지막 학기, 전공 듣느라 거의 듣지 못했던 교양들로 남은 학점을 채우고 말면 되었지만 뭔가 더 배울 게 없을까 찾던 중에 선형 시스템이라는 다른 학과의 전공과목이 눈에 띄었고 마지막 순간에 바구니에 넣었다.

 

공학수학 공부를 하다가 "Linear" 선형이라는 특징이 나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해한 선형성을 설명해 보겠다. 

 

어디로 튈 줄 모르는 복잡한 곡선도 충분히 확대하고 나면 직선으로 보인다. 그리고 직선으로 보이는 순간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직선은 기울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울기란 ~ 만큼 변할 때, ~ 만큼 변한다.라는 것을 의미한다. 

중학교 때 배우는 직선의 방정식을 살펴보면 y=2x인 함수의 x에 1을 넣으면 y는 2가 된다.

이때의 기울기는 2로 x가 1만큼 변할 때 y는 2 만큼 변화한 다는 것을 나타낸다. 

기울기가 있다는 것은 방향성이 있다는 것이다. 방향성은 쉽게 말해 어디로 갈지를 아는 것이다. 

내가 앞쪽으로 간다면 나는 정면으로 발을 내딛을 것이라고 아는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방향성이 있으면 현재로부터 다음 순간을 예측할 수 있게 된다. 

정리하자면 선형성은 예측을 가능하게 해주는 성질이다.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니 얼마나 마법과 같은 이야기인가?

 

여기에 시스템이라는 단어가 더해지면 더 재밌어진다. 

시스템이란 여러 구성요소가 모여서 이루는 공간을 의미한다. 공간상에서 요소들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다양한 일들이 벌어진다. 

주식 시장이라는 시스템에서는 사람들의 욕망이 돈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상호작용하면서 누구는 돈을 잃고, 누구는 돈을 벌며

사회라는 시스템에서는 인간이라는 객체들이 상호작용하면서 여러 인생사가 펼쳐진다. 

이 시스템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예측할 수 있다면 마치 신이 된 기분일 것이다. 

하지만 시스템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너무도 많고,  그 요소들이 가지고 있는 속성도 한 가지로 정의하기 힘들기 때문에 이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할지를 예측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이러한 상호작용을 개별적으로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공간)의 특징을 정의하고 이 공간의 특징을 구성 요소들이 따른다고 가정하는 식으로 반대로 접근을 하고, 선형성을 끼얹기 위해 공간의 특징을 정의할 때 선형성을 가질 수 있도록 비틀고, 쪼개고, 펼쳤다, 늘렸다, 아주 난리를 치면은 이제 다음 순간을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혼자 생각한 선형 시스템은 위와 같았고 강의 계획서에는 일반적으로 선형 대수학 목차에서 볼 수 있는 내용들이 쓰여있었다. 

제멋대로 막 생각한 선형 시스템이라는 것이 제대로 되었나 확인하고 수정하고 싶었고, 수학적 기호와 함께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싶었다. 더 나아가 그래도 교수라는 사람이 수 십 년 동안 공부라는 것을 했는데, 그 경험으로부터의 직관이던가 통찰을 얻을 수 있지 않을 까라는 생각도 있었다. 이 생각이 실수였다. 

 

첫 수업부터 뭔가 싸한데?

남의 학과의 전공 수업이라 처음 들어가 보는 강의실에는 해당 학과의 학생들로 가득 차있었고 나는 이방인으로서 맨 뒷자리로 앉아 교수님을 기다렸다. 강의실 앞 문이 열리고 처음 본 교수님의 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첫 시간인만큼 당연히 앞으로의 강의계획을 설명할 줄 알고 있었는데 그런 말은 일절 없었다. 난데없이 ChatGPT 찬양론을 떠들어대다가 한국은 항상 서양이 만들어 놓은 것을 가져다 쓰기만 한다. 하면서  테슬라를 예찬하기 시작했다.  나는 스스로 애국자라고 불릴 정도로는 한국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왔지만  그 말에 괜히 기분이 나빴다.  또 사람이 야망을 가져야 된다고 하다가도 너희는 어차피 대부분 그저 그런 인생으로 살아가다가 ChatGPT에게 대체될 것이다.라는 말을 한 시간이 넘도록 했다. 

수업이 끝나고 첫 시간이라 학생들이 변화하는 세상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이야기한 것이겠지라고 애써 생각하려 했다. 

하지만 수업의 흐름은 내가 예상한 것과 전혀 달랐다. 강의계획서에 나온 과 전혀 다르게 수학은 어차피 수학자들이 하는 것이다 우리는 공대생인 만큼 이용만 할 줄 알면 된다. 하면서 강의 노트를 대충 설명해 주다가 Matlab 코드를 따라치게 시켰다. 

 

기억에 남는 말

다음은 수업을 들으면서 '인상' 깊었던 말과 그 순간의 나의 느낌이다. 

 

1. 반복문을 두 개 쓰면 연봉이 3000만 원, 반복문을 3개 쓰면 연봉이 4000만 원 

-> 생선 장순가?

 

2. 그저 그런 연봉받으면서 패배자로 불행하게 살아가는 거지

-> 행복을 꼭 돈으로 수치화해야 되나?

 

3. Chat GPT 같은 것을 못 만드는 사람은 모두 대체돼서 GPT가 주는 밥이나 먹고사는 거야. 

-> 그 사람들이 모두  대체돼버리면 잠재적 수요층이 감소할 텐데 그걸 기업이 원할까?

 

수업 중간중간 계속해서 이런 식의 말들을 농담조로 툭툭해댔다. 다른 애들은 재밌다고 웃는데 나는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냥 한 편의 소꿉놀이 연극 같았다. 

대학교를 다니는 동안 신학기에 수강신청을 하면 모두 끝까지 들었기 때문에 수강포기라는 것은 생각지도 못하고 있다가 수강포기를 찾아봤을 때는 이미 기간이 지나 버린 후였다. 

 

 

그래도 F학점은 좀

이제 남은 방법은 수업을 그냥 안 나가는 것.

항상 걱정 많은 나에게는 쉬운 방법이 아니다. 

F학점을 받으면 뭔가 큰일이 날 것 같은 마음에 한 달 넘게 매주 3시간의 시간 동안 영혼 없는 눈깔로 허공 어딘가를 쳐다보며 그냥 버텼다. 

좀만 참자. 

 

 

 

내 인생 리부트를 시작하고 읽은 역행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지에 대한 고민과 함께 시작한 내 인생 리부트 프로젝트이다. 

나는 항상 마음이 허 할 때 학교 도서관이나 서점을 서성이며 책들과 눈 맞춤을 하며 내 말을 들어줄 대상을 찾는다. 

 

23년 4월 18일 화요일, 어제였다. 

오전 수업이 평소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끝났다. 그래서 도서관에 가서 책을 찾던 와중에 역행자라는 책을 발견했다. 

인생 공략집이라니 평소 같으면 유튜브 어그로 썸네일 같은 문구가 있으면 눈길도 주지 않았는데, 왠지 인생 공략집이 진짜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책을 꺼내 들었다. 책의 중간 정도 읽었을 때 작가가 본인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며 자신만의 논리를 일관성 있게 전개해 나가는 것을 읽어 나가면서 역행자라는 것이 진짜 존재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걱정이 너무 많아 싫어도 버티면 언제 가는 새로운 길이 보이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이게 유전자 오작동이란다. 과거 수렵시대에 생존을 위한 본능이 현대인의 뇌 속에 남아 이제는 더 이상 생존을 위한 문제가 아닌데도 인간은 아직도 극렬하게 위험을 회피하려는 성향을 가지도록 했고 이것이 현대인에게 필요한 변화으로부터 저항하는 속성을 가지게 했다는 것이다.  어차피 죽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죽어도 그냥 그게 끝인데 뭘 그렇게 걱정하고 살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운동의 기초 근육이 몸의 중심을 잡아주는 코어 근육인 것처럼 인생을 새로이 살기 위해서는 생각의 중심이 되는 뇌를 고쳐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뇌에 새겨진 잘못된 본능을 거스를 수 있을까?

책에서 뇌를 최적화하기 위해 작가가 추천한 방법은 2-2 방법이다. 하루에 2시간씩 독서와 글쓰기를 2년 동안 지속해 나가는 방법이다. 

이 방법을 듣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저 방법에서 중요한 것은 하루 2시간이 아니라 2년이다.'이었다.

살면서 무언가를 계속한다는 것 특히 하지 않았던 것을 지속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체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책의 앞부분의 피라미드에 역행자가 5%라고 써 놨는데 작가가 0.5%라고 쓰면 사람들이 좌절하고 시도조차 하지 않을 것 같아서 일부러 높게 잡아 놓은 것 같다.  저걸 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 될까 생각해 봤을 때, 1000명이면 5명 정도라고 짐작한다. 

그리고 공평하다고 생각했다. 인생 바꾸는데 저정도는 해야지.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되지?

 

 

시간은 공평한가?

살면서 꼭 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동물로서 잠도 자야 되고, 밥도 먹어야 하고, 인간으로서 삶에서 주어지는 과제들을 해 나가야 한다. 

이런 것들을 다 해나가면서 어떻게 2시간을 마련할 수 있을까? 시간이 필요하다.

 

24시간은 모두에게나 공평하다고 하지만 그 사람의 시간은 그 사람의 의식이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상상을 한 적이 있다. 시간은 멈추지 않는 컨베이어벨트이다.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는 계속해서 무작위로 흩어진 부품들이 지나가고 있고 사람들은 모두 그 컨베이어 벨트 주위에 서있다. 

 

누군가는 찰나의 순간에 주어진 부품들을 주어들고 무언가를 만들어 내지만

다른 이는 부품을 쳐다보면서 고민만 한다. 

유튜브를 보면서 늘어져 있으면 시간의 존재가 희미해지며 사라져 버리고

반대로 목적을 가지고 행동을 하고 있으면 흘러가는 시간 위에 의식이 글자를 새기며 존재가 뚜렷해진다. 

그래서 누구는 시간이 많이 존재하지만 다른 누구는 시간이 적게 존재한다. 시간도 양적 측면에서 불평등하다. 

 

 

안 하기로 선택

3시간 동안 책을 읽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그 수업 시간이 되어서 강의실에 들어가서 앉았다.  

뇌를 움직이니 좀 깨어난 걸까. 

갑자기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아까웠다. 저런 헛소리 들으면서 앉아 있을 바에 땅을 파는 게 정신에 더 이로울 것 같았다. 

 

오늘 오후 3시 나는 서점에 있었다. 

그 수업에는 가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선택을 했다. 현재의 나를 거스르는 방향으로 

 

솔직히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불안하다. 계속해서 나 자신에게 말한다. '그래도 안 죽어' '죽으면 뭐 별 수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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