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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뜀박질

23.05.24 취하는 것보다는 달리는 게 낫다.

 

사람들은 왜 술을 마실까? 

술을 마시는 상황을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로 사람들과 함께 마시는 경우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서 여러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 관계 속에서 많은 소통을 하지만 그 말들의 대부분은 일정한 범위 내에서 제한되어 있다. 

다들 뇌에 안전장치를 하나씩 달고 살아가기 때문에 모든 생각을 꺼내 놓지는 못한다. 

이제부터 이 안정장치를 A 씨라고 해보자. A 씨는 아주 능력이 좋은 관리자이다.

매초 떨어지는 생각들을 빠르게 분류해서 내보낼 것과 내보내지 않아야 할 것을 구분한다. 

A 씨 덕분에 관계망 속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거나 잘 못해석 될 여지가 있는 말들을 쳐내며 살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말들은 보통 그 사람의 내면과 가깝게 위치해 있는 개인적인 말인 경우가 많다. 

인간은 불확실성을 매우 싫어하기 때문에 누군가를 의 신뢰 여부는 그 사람의 깊숙한 구석을 얼마나 아느냐에 따라서 결정되곤 한다.

친목을 위한 자리에서 A 씨가 너무 일을 잘해버리면 이러한 말들이 고개를 내밀기가 쉽지가 않다. 

그래서 술이 등장한다. A씨가 취해버려  점점 행동이 느려지고 분류에 실수가 생긴다. 

이전에는 절대 나오지 않을 것들이 조금씩 새어 나오기 시작하며 사람들은 이 조각들을 이리저리 맞추어가며 자신만의 사람을 만들어 낸다. 

이렇게 창조한 새로운이를 믿기 시작하면서 관계의 끈이 두터워지기 시작한다. 

 

두 번째로는 혼자 마시는 경우이다. 

뇌는 놀라운 공장이다. 끓임 없이 생각들을 뽑아낸다. 

가끔은 너무 많은 생각들 속에서 헤어 나오기가 쉽지가 않을 때가 있다. 

우리 늠름한 A씨도 감당하지 못할 만큼 쏟아지는 생각들 사이에서 무엇을 잡아야 할지 혼란해진다. 

이때 술이 들어가게 되면 뇌의 일부가 마비되면서 기능에 저하가 생긴다. 

뇌는 이때 남은 역량들을 가장 가까운 것들을 처리하기 시작한다.

어쩔 수 없이 잡다한 것들이 나올 수 없게 되면서 하나의 생각에 머무를 수 있게 된다. 

끓임 없이 쏟아지는 자극 속에서 작은 벙커가 되어준다. 

 

안타깝게도 인간은 적응의 달인이다. 

일시적인 변화는 순간의 대처로 넘겨버리지만 반복되는 일상은 새로운 환경으로 인식되고 익숙해진다. 

술과 같은 또 다른 외부의 자극이 지속되면 더 이상 새롭지 않게 된다. 

A 씨는 이전과 같은 양에는 꿈떡도 안 하고 버티기 시작한다. A 씨를 넘어뜨리기 위해서는 새로운 역치를 넘어야 한다. 

공장도 마찬가지이다. 주어진 상황에 적응해 버리면서 자주 안 쓰는 자원은 버리기 시작한다. 

어느 순간부터는 마비를 시켜놔도 이미 그 부분은 비워버렸기 때문에 소용이 없다.

더 세게 브레이크를 걸어 아직 살아있는 부분에 전원을 내려야 한다.

 

그렇기에 달리기가 일상의 소동 속에서 잠시 커튼을 내릴 수 있는 좋은 도구이다. 

당연하게도 몸을 사용하는 데는 뇌의 관여가 필요하다. 

근육의 움직임, 달라진 호흡의 주기, 일상의 속도의 변화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뇌의 자원들이 필요하다. 

뇌의 많은 부분이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니 다른 생각을 만들어낼 겨를이 없다.

달리다 보면 머릿속 가득 차 있던 여러 걱정, 근심 들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것을 경험한다. 

아니 생각 자체가 없어진다. 심지어는 귀에 꽂고 있는 노래도 들리지가 않는다. 

하루종일 옥죄고 있던 고리들은 끓을 수 있어 몸은 힘이 들어도 마음은 힘을 내릴 수 있다. 

 

달리기가 술과 다른점은 자극의 출원지가 내부에 있다는 점이다. 

외부에서는 얼마든지 부을 수 있지만 내부에서는 가진 만큼만 뿜을 수 있다. 

적응이 아닌 성장을 한다.